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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경제] 1837년 공황 (Panic of 1837), 1873년 공황 (Panic of 1873) 리뷰

by pharmconet 2025. 2. 18.

 

 

 

1. 1837년 공황 (Panic of 1837)

발생 배경

1837년 공황은 미국 경제의 급격한 확장과 금융 불안정성 속에서 발생한 대규모 경제 위기였다. 19세기 초반 미국은 서부 개척과 인프라 확장에 힘입어 경제 성장을 이루었으나, 지나친 토지 투기와 신용 확장이 문제가 되었다. 1830년대 초반부터 은행들이 무분별한 대출을 시행하면서 과도한 채무가 축적되었으며, 당시 미국 정부의 정책이 금융 불안을 가중시켰다.

특히, 1832년 앤드루 잭슨(Andrew Jackson) 대통령이 제2합중국은행(Second Bank of the United States)의 재인가를 거부하면서 금융 시스템이 불안정해졌다. 또한, 1836년 시행된 종종령(Specie Circular)은 공공 토지를 금과 은으로만 구입하도록 규정하여 종이 화폐의 신뢰도를 낮추었다.

 

원인

제2합중국은행 폐지: 연방 정부가 은행을 폐지하면서 금융 시장의 안정성이 크게 흔들렸다.

종종령 시행: 정부가 종이 화폐보다 금과 은을 우선시하면서 은행의 대출 시스템이 위축되었다.

토지 투기 붐: 서부 개척과 관련한 과도한 부동산 투기가 진행되었고, 이에 대한 금융 지원이 무리하게 확대되었다.

대규모 신용 팽창: 은행들은 충분한 금속 화폐(금과 은) 보유 없이 신용을 확대하여 위험 부담이 커졌다.

 

결과

1837년 공황이 시작되면서 은행들이 줄줄이 파산하였고, 실업률이 급격히 상승했다. 특히, 뉴욕을 중심으로 많은 금융 기관이 도산하면서 전국적으로 경제 불황이 확산되었다.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고, 공장 가동이 중단되면서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경제 회복에는 약 5년이 걸렸으며, 이 기간 동안 미국 전역에서 극심한 경기 침체가 지속되었다.

 

대응 정책

마틴 밴 뷰런(Martin Van Buren) 정부의 금본위제 유지: 정부는 경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금본위제를 유지하고 연방 정부의 금고 시스템을 강화했다.

독립 재무제도(Independent Treasury System) 도입: 은행을 통한 정부 예산 운영을 줄이고, 정부가 직접 재정을 관리하도록 했다.

토지 판매 규제 완화: 정부는 토지 매매를 촉진하여 경제 활동을 활성화하려 했다.

 

다른 나라에 미친 영향

1837년 미국의 경제 공황은 영국과 유럽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 경제가 침체되면서 영국과 유럽에서 수출이 감소했고, 국제 금융 시장에서 불안감이 확산되었다. 특히, 영국 은행들은 미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미국과의 금융 거래를 축소하였고, 이는 더욱 심각한 신용 경색을 초래했다.

 

 

2. 1873년 공황 (Panic of 1873)

발생 배경

1873년 공황은 남북전쟁 이후 미국이 산업화와 철도 건설에 집중하던 시기에 발생했다. 당시 미국과 유럽에서 철도와 인프라 프로젝트가 대규모로 진행되었으며, 이에 따른 투자가 폭증했다. 그러나 과잉 투자와 과도한 신용 확장이 금융 위기를 초래했다.

1870년대 초반, 미국 경제는 철도 산업을 중심으로 성장했으며, 대규모 철도 회사들이 주도하는 인프라 건설이 경제의 핵심이 되었다. 하지만 철도 산업의 성장 속도가 투자 규모를 초과하면서 결국 버블이 터졌다. 1873년, 미국의 주요 금융 기관인 제이 쿡 앤드 컴퍼니(Jay Cooke & Company)의 파산이 금융 위기의 신호탄이 되었다.

 

원인

철도 산업의 과잉 투자: 철도 건설 붐이 일어나면서 많은 회사가 무리한 차입을 했으며, 결국 부채를 감당하지 못했다.

과도한 신용 확장: 은행들이 철도와 공업 부문에 대규모 대출을 제공했지만, 수익성이 부족하여 부채 상환이 어려워졌다.

국제 금융 시장의 불안: 유럽 경제의 불안정성이 미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쳤으며, 유럽의 투자자들이 미국에서 자금을 회수하면서 위기가 가중되었다.

금본위제의 유지: 당시 미국은 금본위제를 유지하면서 통화 공급을 제한했으며, 이는 경제 회복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결과

1873년 공황은 ‘장기 불황(Long Depression)’의 서막을 알렸다. 미국에서는 수많은 은행과 철도 회사가 도산했고, 주식 시장이 붕괴하면서 경제 불황이 장기화되었다. 실업률이 급증하고, 대기업들의 연쇄 파산으로 인해 경기 회복이 더뎌졌다. 특히, 철도 산업과 건설업이 직격탄을 맞아 대규모 실업 사태가 발생했다.

 

대응 정책

정부의 금본위제 유지: 당시 연방 정부는 화폐 공급을 늘리기보다는 금본위제를 유지하며 금융 안정성을 도모했다.

통화량 축소 정책: 긴축 재정을 유지하면서 경제 회복보다는 금융 시장의 안정성 유지에 집중했다.

철도 산업 구조조정: 부실 철도 기업들이 정리되면서 정부와 은행들은 철도 산업에 대한 지원을 축소했다.

 

다른 나라에 미친 영향

1873년 공황은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경제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독일과 영국에서는 철도 산업과 제조업 분야가 큰 타격을 입었으며, 국제 금융 시장이 불안정해졌다. 또한, 유럽의 은행들은 미국과의 대출 및 투자 관계를 축소하면서 글로벌 경제가 위축되는 결과를 낳았다.

 

 

요약

1837년과 1873년 공황은 미국 역사상 중요한 금융 위기였으며, 두 공황 모두 과도한 신용 팽창과 투기, 금융 시스템의 불안정성에서 기인했다. 1837년 공황은 은행 시스템과 정부 정책의 실패에서 비롯되었고, 1873년 공황은 산업화와 철도 투자 붐의 과열이 주요 원인이었다. 이 두 위기는 금융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오늘날 경제 정책 수립에도 중요한 교훈을 제공하고 있다.